‘나의 아저씨’의 죽음

#1. 지난 주 영면에 든 배우 이선균 씨는 영화 ‘기생충’으로 연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그의 인생작으로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가수 아이유와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작품에서 그는 세상을 향해 가시를 세운 상처투성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참된 어른’의 역할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평소 드라마와 거리가 먼 중년 남성 중에도 이 작품을 보고 오랜만에 눈물샘이 터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2. 그 ‘국민 아저씨’가 마약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에 더 크게 놀랐다. 그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공터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죽기 전날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요구하며 억울해했던 그의 죽음에 동료 연예인들과 팬들은 아연실색했다. 부인 앞으로 ‘어쩔 수 없다’ ‘이 길밖에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마약 의혹이 제기되기 전인 10월 초 미국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기는 내 일기, 앞으로 또 다른 일기를 쓰고 싶다”고 한 것이 대중을 향한 마지막 인사가 됐다.
#3. 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3차례나 포토라인에 섰다. 흉악범도 포토라인에 한 번 설까 말까 한데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공개리에 소환됐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검사에서도 마약 음성으로 나온 뒤 이달 23일 세 번째 소환 때는 고인 측이 비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를 협박한 A 씨의 진술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그를 거듭 포토라인에 세웠다.
#4. 미리 약속된 시각에 맞춰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은 경찰 수사공보 규칙에서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법무부 훈령에도 사건 관계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언론 등과 접촉하게 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특히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엔 더욱 그렇다. 최근 마약 무혐의를 받은 지드래곤 역시 포토라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마약 혐의로 기소된 유아인도 두 번째 소환부터는 비공개를 요구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 중에는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이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절절한 자기 위안으로 어떻게든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공감을 산 대사였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는 포토라인에 서고, A 씨와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모두가 아는 일’의 주인공이 됐다.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누적된 수치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한다. 포털의 악성 댓글로 유명 배우들이 자살한 뒤 댓글이 금지된 것처럼 연예인을 무작정 포토라인에 세우는 관행도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
왈가왈부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조심스러운 뉴스라서 사실 이렇게 올려도 되는지 아직도 고민이 된다. 단순한 연예계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마약의 대중화에 대한 우려, 정치적 공작 등에 대한 의심 등과 같은 대중이나 언론의 이야기들이 단순한 상상만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그러한 상상들이 결국 한 배우를,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가정이 있는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최하점은 맞지만 그것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또 이렇게 한 사람의 자살로 그가 했던 과오와 실수들이 미화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배우로서 그에게 받았던 감동과 웃음들을 한번더 곱씹으며 그의 평안과 위로를 기도하는 바이다. 편안함에 이르기를.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