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로부터 구원받으시겠습니까,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김민희, 김태리의 노출부터 해서 레즈 영화라는 게 널리 알려져 세간의 화제였었다. 더군다나 감독이 거장 박찬욱이라는 것. 나 또한 노출에 크게 끌린 것 인정한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내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만큼 민망할 정도의 수위라서 놀랐던 기억도 함께 난다. 그만큼 개봉 후에 큰 논란이 일었었고 아직도 <남성의 판타지로 가득한 추잡한 포르노> 또는 <여성 전시>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평가가 흔하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를 그래도 의미 있게 담아보려고 한다. 극중에 히데코가 혼잣말로 이야기하는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숙희>에서 암시하듯이 이 영화는 구원과 연대에 관한 영화다. 즉, 이는 세속적이고 타락적인 성으로부터, 엄격한 규율과 억압의 가부장제 질서로부터,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생긴 애정결핍으로부터, 사회와 환경이 만들어준 허상의 나로부터의 구원과 연대를 뜻한다. 따라서 제목이 아가씨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히데코 또는 히데코를 아가씨라고 부를 수 있는 숙희가 될 것이며,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함께 힘을 합해 어떤 악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한다.
욕망으로 가득한 별채는 여성을 한낱 도구로 전락시키는 곳이다. 마치 최근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N번방 사건을 연상시킨다. 히데코는 이 곳에서 남성들로부터 희롱당하고 성을 착취당한다.(장롱에 있던 구슬이 성착취를 상징) 하지만 혼자 힘으로 이 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식인들은 카르텔을 형성하여 권력을 유지하며 은밀한 공간에서 두 얼굴의 탈을 쓰고 일탈을 하기에 그들을 막을 힘이 없다. 그녀의 이모 또한 그러한 성 억압에 못 이겨 벚꽃나무에 목을 맨다.
이모부 코우즈키는 히데코의 후견인이지만 사실 엄격한 규율과 채찍질로 가부장제 질서를 만들고 여성을 남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데 앞장서는 인물이다. 그의 혀는 항상 검게 그을러져 있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는 곧 정문을 지키는 독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모성애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히데코와 숙희 모두 일찍 엄마와 이별하여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히데코와 숙희는 서로에게 엄마의 살결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골무로 이를 부드럽게 갈아주는 것도 마치 엄마가 아기 돌보듯 하지 않는가? 또, "웃었지. 엄마는 너를 낳고 죽을 수 있어 운이 좋았지." 라며 숙희가 히데코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도 이러한 엄마의 사랑을 대신 느끼게 해주면서 서로에게 더 기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