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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폭력가해자이자 폭력피해자이다, 구타유발자들(A Bloody Aria, 2006)

내가아는타짜중에최고였어요 2023. 12. 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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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젤 재밌게 본 영화인 것 같다. 역시 2000년대 초중반에 만든 대한민국 영화들 중에 숨겨진 명작들이 많다. 말도 안되는 설정 같지만 또 어찌 보면 실제로 겪어볼 만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감정이입도 잘됐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예방교육 자료로 쓰고 싶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 아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집에서 혼자 봐야되는 영화다. 누군가랑 같이 보다가는 대판 싸우거나 또는 삼겹살 구워 먹겠지.

 

#2. 이 이야기의 핵심은 폭력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결국에는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성질이 있고 폭력에는 위계질서가 있어 더 강한 폭력의 상대가 나타나면 쉽게 굴복하거나 더 강한 상대에게 빌붙는다. 교수가 동네 양아치들의 기에 눌려 차에서 자는 척을 하다가 차가 공격 당할 위기에 처하자 차에서 내려 소리를 지르며 기선 제압을 하려는 장면이 압권이다. 좋아 쐐기를 박자. 더 센 첵을 하려고 담배를 물려는데 떨리는 팔을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다. 그 작은 미묘한 변화를 눈치 챈 양아치는 교수에게서 약자의 냄새를 맡는다. 폭력을 당하게 되는 시점을 절묘하게 연출한 것 같다.

 

#3. 등장하는 인물 모두 영화 제목처럼 구타유발자들이다. 교수(이병준 분)는 자기 지위를 이용해 성 착취를 하려고 했으며, 교통 법규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어긴다. 불량배들은 누군가에게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오근(오달수 분)은 새나 쥐들에게, 홍배(정경호 분)나 원룡(신현탁 분)은 고등학생 현재(김시후 분)에게, 또 이들의 우두머리 봉연(이문식 분)은 오근에게 말대꾸를 못하도록 위협을 가하거나 홍배의 오토바이를 강압적으로 빌린다. 그나마 착하게 당하고 있던 현재(김시후 분)도 합기도로 양아치들을 제압한 후 기름을 붓고 불로 태워버리려는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기원이 되는 문재(한석규 분)는 뭐 두말할 것도 없다.

 

#4. 명대사들이 많다. "더 때려봐! 어때? 때리는게 더 힘들지?"의 봉연의 말은 폭력의 위험성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으며, "때리는 놈은 경찰이 됐네? 맞는 놈은 여전히 맞고 있고!"의 문재의 말은 폭력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버리는 현실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악의 세력인 양아치들을 처치하기 위해 등장한 문재가 나타났을 때 카타르시스가 아닌 더 역겨운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것이겠지만. 그래서 감독은 양아치들이 아닌 문재를 처치함으로써 악의 기원을 끊어버리는 결말을 만든 것 같다.

 

#5. 영화를 보고 있는 나는 폭력을 관망하고 있는 제3자의 시선이다. 제3자로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실 크게 와닿지 않을 수가 있다. 왜?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한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안다. 너 당해봤어? 그 지옥같은 삶을. 폭력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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