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우리에겐 아무일도 없었다(Do Not Hesitate, 2021)
#1. 반전영화다. 전쟁의 잔혹함과 여전히 전세계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전쟁에서 겪은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 참전 군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국가가 보상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된다.
#2. 중동 분쟁지역에 평화유지대로 파병을 간 네덜란드 호송대 군인들 에릭, 로이, 토마스. 경계보초 중 실수로 죽여버린 염소 주인 어린아이가 나타나면서 벌여지는 일을 긴박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연출해냈다. 한정된 지역과 4명의 등장인물 뿐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하는 수수께끼가 있어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3. 어린아이는 사실 약하고 힘없는 존재이지만 이 영화에서 빌런같은 존재다. 염소값을 더 받기 위해 뻐대기도 하며, 염치도 없이 자꾸 먹을 것과 물을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그런 약한 존재가 눈에 계속 밟히는지 에릭은 다른 병사들과 달리 친절히 대해준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병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질문을 던진다.
#4. 처음에는 예전에 읽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오르면서 적에게 우리의 위치를 노출시킬지도 모르는 이 어린아이를 과연 살려두어도 좋은가의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럼에도(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 어린아이의 목숨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이상”과 잘못된 판단 하나로 생사를 넘나들 수 있는 전쟁의 “현실”을 잘 보여준 것 같다.
#5. 주인공이 드럼을 치는 장면과 군인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각각 2번씩 나온다. 그런데 그 각각 두장면은 어떤 특정한 사건(스포일러)이 일어난 후에 나오는데 앞에 장면과 느낌이 다르다. 특히 마지막 나이트클럽 장면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처절하고 애처로우면서 감정이 극에 치닫는다. 군인이 아니였으면, 전쟁이 없었으면 그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음악을 즐길 20대 청춘들이었던 것이다.
#6. 네덜란드 영화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첫 작품으로 그래도 재밌게 본 것 같다. 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주 및 유럽 추천작 10편 중에 하나로 소개되었다. 원래 영화제목이 <Do Not Hesitate>인데 한국 버전으로 제목을 잘 뽑아낸 것 같다. 뭘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영화를 다 보고 감상평을 적고 있는 지금도 난 모르겠다. 오히려 더 주저하고 있다는 느낌만 들 뿐.

#우리에겐아무일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