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뮤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ight Now, Wrong Then, 2015) 리뷰 해석

반응형

#1.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노래로 영화는 시작된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전개와 결과가 나오는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배치한 이 영화는, ‘동일한 상황이 주어져도 그때그때 인생이 달라진다면?’이 로그 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장르에, 소재는 ‘수원 출장’이고 주제는 ‘윤희정 꼬시기’이다. 메인플롯은 ‘수원에 온 춘수가 외로운 희정을 꼬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2.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이 둘의 소제목이 따로 있다. 전반부의 제목은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 그리고 후반부의 제목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다르다’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전반부는 ‘틀렸고’, 후반부는 ‘맞기’ 때문에 전반부에선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후반부에선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동일한 시작점과 목적을 가진 두 부가 병렬된 것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작은 것들에 바뀌는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함춘수’라는 인물을 통해 ‘말’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카메라 구도나 보이스오버 유무 등도 달라지게 되는데, 그렇게 이 둘은 같지만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된다.


#3.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큰 사건이나 인생에 전환점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작은 목표나 생각의 전환이 될만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는 주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함춘수’의 모습을 통해 1, 2부 내에서도 막이 나뉘게 된다. 춘수가 수원에 도착해서 보라와 썰매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수원화성에 들어가기까지가 프롤로그라고 생각했다. 화성에 들어가며 춘수는 ‘조심해야지, 하룬데!’라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본인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 조심하려고 하지만, 이후에 희정을 만나며 본인의 다짐이 무너지게 된다. 2부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는데 구태여 재설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어떻게 결혼 후에도 안 깨지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

#4. 이후에 희정과 카페에 가기까지가 1막(첫만남)이라고 구분했다. 복내당에 앉아있는 희정에게 춘수는별 시덥지 않은 말을 건넨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서로는 춘수의 제안으로 카페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2막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2막에서부터는 본격적인 두 인물의 ‘친해지기’(카페에서 작업실로 마지막은 술이 있는 횟집)가 시작된다. 서로의 예민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2부에서는 심지어 가정 이야기도 꺼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너무 직진인 춘수의 말들에 희정은 왜 그러시냐고도 하지만 그들은 대화를 통해 동질감을 느낀다. 물론 그 동질감은 춘수가 희정을 꼬시기 위해 거짓말로 만든 것이다. 2부에서는 작업실에서 작은 다툼이 발생한다. 춘수가 희정의 그림에 대해 1부에서는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냈다면 2부에서는 솔직히 본인의 감상평을 말한다. 여기서 희정은 상처받게 되는데,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이후의 대화를 통해 서로는 더 가까워진다. 이걸 2막의 혼돈 뒤 친해지기 2로 볼 수 있다. 1부 2부 동일하게 나누는 서로의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대화는 그들이 강렬히 이성적으로 끌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1부에서는 여기서 멈췄다면 2부에서는 서로 이미 만나는 사람과 아내가 있음을 밝힌다. 여기서 보이듯 1부와 2부의 가장 큰 차이는 ‘솔직함’이다. 취한 희정은 약속이 있다며 춘수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데, 단둘이 있고 싶은 춘수는 이를 두고 같이 갈지 혼자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게 미드포인트라고 판단했다. 다른 영화 속의 미드포인트에 비해서는 매우 작은 사건으로 보이지만 술은 취하고 밤은 다가오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춘수의 행동에 큰 장애물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본인이 낄 자리가 아닐 것 같다는 고민을 하지만 희정을 꼬시려는 목표가 확실한 춘수는 희정을 따라 모임에 따라간다.


#5. ‘저기서 조금 전까진 너무 완전 했었는데’라는 춘수의 속마음과 함께 희정의 아는 언니가 하는 ‘시인과 나룻배'에 가며 3막이 시작된다. 춘수에게 이 모임은 너무 지루했을 것이다. 어딜 가나 듣는 똑같은 칭찬과 감탄, 하지만 희정이 있기에 여기에서도 온 신경은 희정을 향해 있다. 그러다 1부에서 희정의 그림에 대한 칭찬이 어딜 가든 하는 소리라는 게 밝혀지자 잘 흘러가던 춘수의 목표는 흐트러지게 되고,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아예 희정의 마음마저 틀어지게 된다. 2부에서는 먼저 춘수가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취해버린 모습을 공개하여 타인들을 통해 본인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막는다. 차라리 취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소동 이후 혼자 집에 돌아가는 1부의 희정과 달리 2부에서는 한껏 들뜬 둘이서 희정의 엄마를 속이며 이후를 약속하며 헤어진다.

#6. 에필로그는 춘수가 GV를 하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이루어진다. 타인의 말 때문에 본인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분노의 1부 ‘춘수’는 GV에서 말의 힘에 대해 얘기하다가 흥분하고, 또 괜히 화를 내기도 한다. GV 이후 어제 만난 시인과의 대화나 보라와의 대화 모두 춘수에겐 따분하고 지루하다. 특히 시인에게는 어제에 대한 원망스러움도 담겨있다. 이는 화성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춘수의 일탈이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분노가 없다. 목표를 이룬 춘수에게는 다정함만이 남아있다. 이렇게 1부와 2부는 같은 시작과 막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솔직했는가?에 대한 차이로 인해 완전히 분리된 이야기가 된다. 내용 구조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홍상수 감독은 차이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같은 이야기도 중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표현방식이 달라진다는 게 확인 가능하다.

#7. 영화 첫 시작에 나온 ‘봄이 오면’은 영화 내에서 장소의 이동 등 많은 장면에서 틀어진다. 희정이 등장할 때도, 춘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나온다. 오르간으로 연주한 ‘봄이 오면’은 이 영화를 더 일상적인 내용을 비일상적으로 만들고 춘수의 행동들이 미련하고 한심하게 보이도록 돋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노래의 가사가 나오지 않지만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피듯이, 춘수의 몸에 희정이라는 꽃이 피었고 춘수의 마음도 피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8. 영화에는 두 인물이 나온다. 함춘수는 영화감독으로, 수원에는 관객과의 대화(GV)를 하러 왔다. 이 인물의 목표는 영화 주제와 동일하게 ‘윤희정 꼬시기’이다. 그리고 정말 그 목표가 분명하게 모든 행위가 목표지향적이다. 그의 행동들은 오직 희정을 꼬시기에 안달나있음을 보여주고 그의 시선, 행동 목적성이 모두 희정을 향해있다. 춘수는 본인의 영화도 잘 모르고, 희정의 그림도 잘 모른다. GV에서조차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춘수는 예술인들의 논쟁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지금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는 춘수에게 이 수원 출장과 희정과의 만남은 새로운 도피처이자 일탈이 되었을 것이다. 2부에서 춘수라는 인물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동일한 인물이지만 얼마냐 솔직했느냐, 어떤 말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찰나의 말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에 대한 질문을 춘수를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게 된다. 우리가 평소에 뱉는 말들, 그때 그 말을 바꿨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9. 윤희정은 화가다. 이전에는 모델일을 했다. 본인 입으로도 자기가 예민하고 친구가 없다고 하는 윤희정의 목표는 ‘외롭지 않기’라고 볼 수 있다. 모델 일을 그만두고 화가 일을 시작한 희정은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응원이 필요했을 때 본인의 그림을 인정해 주는 1부의 춘수가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또 그런만큼 2부의 춘수가 얄궂었을 것이다. 춘수만 2부에서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희정도 솔직해진다. 춘수의 아내가 있다는 말에 1부에서는 저리 가라고만 했다면, 2부에서는 섭섭하다고도 표현했으며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에도 상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다. 희정은 외로운 인물이기에 춘수가 일식집에서 울었을 때 더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유부남이라는 도덕성을 버릴 만큼 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희정의 모든 행동들 또한 본인의 외로움을 탈피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