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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성적표의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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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의김민영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닌 "성적표의 김민영"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보통 "A의 B"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B이다. "김민영의 성적표"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표가 된다. 그럼 이때 우리는 김민영의 성적표가 어떠한지가 궁금하게 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 김민영의 성적표가 유정희의 관점에서 이랬구나.'하고 끝날 일이다. 그러나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적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민영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멀리 떨어져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는 관람객이 많더라. 10대 사소한 것에도 꺄르르 웃음이 터지던 그때의 친구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조금씩 소원해진 지금 전화번호를 눌러 안부를 묻고 싶지만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아마 다들 그러지 않을까? 누구나 다 세 친구 중에 한명일 것이다. 그리고 이또한 상대적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정희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민영이일수도 있다.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아마 민영이가 제일 많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은 정희이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민영이들을 위한 영화다. 영화 초반부 민영이의 삼행시에서 이를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에서 세 친구는 고교시절 삼행시클럽을 만들어 서로가 만든 삼행시를 만들어 발표하면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그 때는 진짜 어떤 것을 해도 재밌지 않은가. 하지만 수능이 끝난 후 성인이 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주인공 정희는 테니스의 왕자라는 만화책을 너무 좋아해 아르바이트로 테니스장에서 일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면 수영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하며, 방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스케이트를 타자고 한다. 친구 민영이는 기성 세대에 반항하는 의식이 깨어있지만 정작 자신의 학점에 목맨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아직 서툰 인간관계에 상처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친구 수산나는 이제 친구들과 연을 끊었다. 물론 이는 자의가 아니다.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수산나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화상통화 뿐이지만 이 또한 시간이 맞지 않아 친구들에게 점점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모두가 각자 그렇게 살아가는 것 뿐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이별하고 있다. 정답은 없다. 마지막 정희가 준비해 둔 경단을 한 입만 먹고 치워버렸듯이 민영이에게는 그런 성적표를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중간중간에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나 액자식으로 구성된 이야기가 앙증맞게 느껴진다. 특히 영삼이 이야기가 많이 생각난다. 영삼이 이야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던 정희와 민영이의 동거를 지켜보면서 긴장감을 느껴야 했던 것도 어쩌면 내가 겪었을 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던 갈등과 침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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